냉무
텍스트를 건성으로 읽어도, 얘는 누워서 침뱉고 있다..
말할 가치도 없군....
보잘것없는 내블로그 이자만...앞으로는 얘에 관한 글은 지양해야겠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가락과...
무한한 인터넷 공간을 오염시키는 것 같아 미안할따름이다.
획일화된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작은 저항...
보수적인 금융기관에서는 모두가 양복을 입는다...그게 예의란다..
어디서 굴러먹다온 예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하였다...
그래도 양복, 와이셔츠, 넥타이의 색깔은 모두가 다르니깐...
일관성 속의 다양함은 약간이나마 존재한다고 자위해본다...
2009.여름
회사에서는 여름 복장으로 반팔티랑 와이셔츠 한벌을 나눠준다..
첫날..그냥 와이셔츠를 입고 회사에 갔다..
회사 직원의 70%가 입고왔다. 가관이었다..
편한 반팔티가 일의 능률을 향상 시킬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마치 북녘의 매스게임을 연상시킨다..
한 회사의 직원임의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한 모습...끔찍했다...
3일이 지나고 한번 입고 회사엘 가봤다..90%이상이 입고 있었다...
지하 매점에 갔는데 정확히 100%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와 와이셔츠로 갈아 입었다..다시는 입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소심한 저항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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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하기만 한 이글을 99학번 곽형근 학형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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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 로마 시대..
인간 이하의 학대와 천대를 받던 노예들과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던 나환자들 그리고 빈민지역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sis of Accicis)라는 사람이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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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98년 대한민국 서울..
산업 발전의 상징이자,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발전의 속도에 뒤쳐진 사람들의 마지막 통로가 되고 있는..
지하철..
그 한 구석에서 나약한 청년은 참으로 기묘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멍하니 천장 광고를 바라보거나, 어두컴컴한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어가고' 있는 한 아이..
그는 잘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며 부지런하게도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갔다.
사람들은 그 아이가 왜 거기서 기어다니고 있는지 별 관심이 없다..
다만.. "돈을 주지 않는 것이 저 아이를 위한거야"라고
어디서 줏어 들은 말을 떠올리며.. 잠시동안의 불쾌함을 .. 달랜다..
나약한 청년은 생각한다
이건 말도 안된다.. 왜 사람들은 가만히 서있는 거지? 저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돈이 아니라는 걸 안다면.. 왜 저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거지? 그저 한 번만 손을 내밀어주면 저 아이의 인생이 바뀔 수 있는데, 왜 모두들 멍하니 서있는 거지!?!
하지만 나약한 청년은.. 이미 그런 광경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아이를 외면하는 대중속에 이미 속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더욱....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리고 좌절한다..
사람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나환자와 노예들에게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돌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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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소외시키는 자와 소외받는자..
도대체 왜 부와 행복은 나눠지지 않는 걸까.. 왜 사람들은 똑같아 질 수 없는 걸까..
그런 건 이미 누구나 다 생각했던거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유토피아 ..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많았는데.. 왜 세상은 나아지지 않고 또 다른 문제를 쉴 새없이 만들어내는 걸까..
나약한 청년은 아무런 해답도 구하지 못한 채 대학이란 곳에 들어왔다..
단지 막연한, 아주 작은 희망만을 움켜쥔채..
그리고 '봉사활동'이란 것을 한다고 하는 곳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청년은 문을 두드렸다..
환영합니다 다 소 미
그 안에는.. 극도의 허무도 있었고..놀랍도록 신비한 광경도 있었다..
무언가 빛이 보였지만.. 그것이 청년이 원하던 해답인지는 알 수 없다..
청년은 그 빛을 확인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달린다..
힘차게 달리면서 청년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슬픔과 기쁨이 함께 솟구쳐 올랐다..
어쩌면.. 해답을 찾지 못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저 달리는 것 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년은..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며 계속해서 달린다..
2001년 서울
한 나약한 청년은 성 프란시스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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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 청년의 후배가 2001년 한 봉사동아리 날적이에 적었던 글이다.
이 글을 끝으로 그 후배는 의경에 자원입대를 하였다. 의경으로 가면 주말에 자주 나올 수 있어 봉사활동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입대 후 3개월 그는 ‘자살’이라는 미명하에 24살의 짧았던 생을 마감한다.
그 청년은 후배의 죽음에 분노하였고, 의경내에 존재하던 잦은 폭행과 폭언이 원인임을 밝혀내 그 친구를 대전 현충원에 묻어 주었다.
그 후배의 죽음 후 날적이를 정리하던 중 찾아내었던 이 글...
그 글은 이 청년에게 커다란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그 후배는 여느 대학생처럼 자신의 행복만을, 안위만을 좇지 않았다. 그가 필요한 곳은 어디든지 손을 내밀었고, 어깨를 빌려주었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보며 세상을 모른다고 미련하다고 혀를 찼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항상 빙그레 웃으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2..
젊은 날 혼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 의식을 가진 좌파라 규정하며 학생운동을 하는 이들과 학습도 하고, 달려오는 전경들을 향해 돌도 던지면서 세상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언젠가 일어날 것이며, 그로 인해 이 더러운 자본의 시대를 끝을 맞이할 것이라고 믿던..오로지 허왕된 관념만을 가지고 살던 청년은 20대의 끝자락에 자본주의 체제에 굴복하였고, 30을 훌쩍 넘긴 지금 자본에 길들여졌다.
‘세상은 원래 이런거야’라며 세상을 제 마음대로 재단하면서 이따금 인터넷에 올라오는 진보인사들의 글에 사회의식을 배설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 그 청년이 듣게 된 [예수전]...
그 청년은 마르코복음 속에 투영된 인간 예수의 모습을 알게되면서, 10년전 쯤 후배의 날적이를 처음 보았을때의 느낌을 떠울랐다. 예수는 청년이 생각하던 커다란 후광을 뒤로 한채 온화한 얼굴만을 보여주는 교리속의 성령이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기도를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거짓된 세상의 조화로운 회복을 위하여 올곧게 투쟁하시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청년은 예수전을 읽으며 기억속 저편에 묻어 두었던 후배를 떠울렸다.
그리고 그 청년은 눈물을 흘렸다. 물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서였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그청년은 예수가..그리고 아직 24살인 그 후배가 부러워서였다.
예수도..그도 행복해보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도 행복하지만 ‘우리’모두가 행복해지는 일이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일을 해나갈수 있었다.
청년에게 그 후배는 또다른 예수였다. 그리고 그는 용산에서, 아스팔트 위에서, 그리고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애써 외면했던 수많은 예수를 알게 된다. 그 모든 예수들은 행복해하고 있었다.
3..
그 청년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다. 그 청년은 자신의 후배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만한 자신이 아직은 없다. 하물며 예수의 삶을 뒤쫓기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더 행복해지는 일인가를 제 삶속에서 끊임없이 되내어 볼것이다. 그리고 ‘나’보다는 ‘네’가, ‘나’보다도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비록 그 생각이, 그리고 그 생활이 당장에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계속되는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행복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의 조화 역시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회복할 것이라 믿는다.
청년의 예수전은 미완성이다. 시작의 몇페이지는 낙서로 얼룩져있다. 하지만 앞으로 넘기게 될 새로운 페이지에는 몽당연필로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서 써볼 생각이다. '나'와 '우리'의 역사속에서 천천히, 깊고 큰 호흡으로 말이다.
청년의 예수전은 현재진행형이다.
